지금 여야 정당에선 총성 없는 학살(虐殺)이 진행되고 있다. 유권자에게 평가 받기 이전에 정당조직으로부터 인위적으로 퇴출당할 이들이 너무 많아 대학살(大虐殺)이란 표현이 맞을 지경이다. 

 정치적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쿠데타군들이 제시한 필살(必殺) 살생부(殺生簿) 보다 더 지독한 살생부에 따라 정치인들의 목이 댕강댕강 날라 가고 있다. 이의 결과는 한국 정치판의 완전 재편이다. 가장 특이한 것은 김대중-김영삼-김종필-박근혜 세력의 정치인들이 거의 동시에 줄줄이 학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내막을 분석해본다.

▲3월 6일 있었던 민주당 공천심사위 회의 장면.

군사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전두환은 총칼로 정치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군출신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입에 맞는 이들을 공천하고 나머지는 학살 처분했다. 당시 이에 대항했던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소위 3김은 호남-영남-충청으로 삼분, 의회를 장악했다. 지역바람을 일으켜 지독한 독재정권을 견제한 것이다. 그 후 김영삼-김대중은 집권에 성공, 자파세력을 의회에 포진시켰다. 김대중 정권의 재집권 성격인 노무현 정권 역시 자기 색깔의 인물로 의회를 이끌게 했고. 나머지는 박근혜 계파를 포함한 영남세력이 의회에 진출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번 4.9총선은 지난 총선과 판이하게 다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공천혁명'이란 말이 맞을 정도다. 더 보태면, 피를 동반한 쿠데타적 공천이 이뤄지고 있다. 판 자체가 무시무시하게 바뀌고 있다. 올 총선의 최대 특이점은 김대중-김영삼-노무현-박근혜 세력을 쓸어내는, 즉 그 세력들을 모조리 목을 쳐, 용도 폐기하는 혁명적 현상이 가시화됐다.


총선서 김대중-김영삼세력 퇴장

김대중 전 대통령 세력은 이제 몰락지경에 도달했다. 측근이었던 권노갑,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인 박지원, 차남인 김홍업 의원, 한화갑 전 대표, 설훈 전의원, 이용희 국회부의장 등의 측근-실세들이 출마조차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떨어졌다.
 
특히 통합민주당의 공천심사위원회는 박지원-김홍업 등 실세를 탈락시켜 김대중 세력의 의회진출을 아예 차단했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을 내놓고 지지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세력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차남 김현철, 박종웅 전의원 등이 한나라당 공천에서 배재됐다. 김종필 세력도 마찬가지다. 유운영 전 자민련 대변인, 장일 전 자민련 부대변인도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됐다. 노무현 세력도 비슷한 처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마저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제외됐다.

한나라당 집권 공신인 박근혜 전 대표 세력도 추운 시베리아로 내몰렸다. 친박(親朴)으로 분류되어온 이규택 의원(여주-이천) 한선교 의원(용인 수지)도 공천에서 오리알 신세가 됐다. 이어지는 영남권 공천에서 친 박근혜 인사가 얼마나 살아남을지가 미지수. 박근혜 전 대표측 세력의 뿌리뽑힘도 이번 총선의 독특한 한 현상이다.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소위 3김 세력과 노무현 세력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 군사쿠데타 출신 권력자 주변의 실세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한국 민주화를 쟁취해냈고, 민주국가를 만들어 냈다. 김종필 세력만 해도 김대중 정부에겐 그 탄생을 가능케 한 은인적 세력이다. 이들을 총칭 '범민주화 세력'이랄 수 있다.
 
공천심사위에서 전권(全權)을 쥐고 공천을 탈락시키는 것은 쿠데타나 다름없는 일. 군사정부 하에서 사용했던 하향식공천 악습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구의 당원들이 후보를 뽑는 상향식 공천은 완전 사라지고, 당이 후보를 정해서 내려 보내는 하향식 공천이 자리를 잡았다. 쿠데타식 공천으로 인기를 얻은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의 주가상승은 의미가 있지만, 일면 창피한 일이기도 하다. 독재식=하향식을 통한 인위적인 인재퇴출이기 때문이다. 박재승의 빛과 그림자가 너무 선명해, 총선 이후의 후유증이 예상된다. '범민주세력'이 공천(公薦)이란 마술방망이에 의해 인위적으로 퇴장당한, 그 상처의 치유가 염려된다.


학살 반대급부 무소속 약진예상

정치적 전통이 이어지지 않으면, 뿌리 뽑힌 나라로 갈 수 있다. 또한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정치의 역전 노장들인 3김과 노무현 세력, 그리고 박근혜 세력이 그냥 앉아서 퇴장 당할 것 같지는 않다. 학살적 공천에 따른 반대급부로, 무소속의 약진도 예상된다.

학살 성격을 띤 여야 정당공천이 일단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 결과는, 집권 여당으로서는 이명박 대통령 세력으로, 야당으로서는 손학규-이회창 세력으로 양분되는 수치로 가시화될 것이다. 총선은 승리(勝利)만의 예술이다. 패자는 사라질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며. 국가를 향해 아픈 만큼 역사는 발전할 것이다. moonilsu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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