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하림 시인을 추모하며 … 3편
최하림 시인의 작품세계
본지는 총 3회에 걸쳐 최하림 시인의 프로필과 작품세계, 고 최하림 시인의 친구이자 신안군의회의장 출신 김제희 전 의원 기고, 고 최하림 시인의 작품세계 등 순으로 연재한다.
게재순서:
고 최하림 시인을 추모하며 1편
최하림 시인의 프로필과 작품세계
고 최하림 시인을 추모하며 2편
잊혀진 시인의 고향, 옛 기억 속에서 되살리다
김제희 선생님
(전남 신안군 팔금면, 고 최하림 시인의 친구)
고 최하림 시인을 추모하며 3편
최하림 시인의 작품세계
자료제공: 김제희 선생님 (전남 신안군 팔금면, 고 최하림 시인의 친구)
▲ 고 최하림 시인 © 신안신문/폭로닷컴 편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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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 신안 팔금도 출신 故 최하림 시인
1939년 전남 신안군 팔금도에서 태어난 고 최하림 시인(1939~2010).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하림시인은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76년 첫 시집 '우리들을 위해'를 비롯 '작은 마을에서'를 냈다.
최하림시인은 이어 '겨울 깊은 물소리',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풍경 뒤의 풍경',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 등 총 일곱 권의 시집을 냈다.
60년부터 80년까지 군사정권 시대 억압받는 엄혹한 현실을 지나면서 민중의 분노와 한을 담은 완성도 있는 시 세계를 구축한 최하림 시인은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열린 시선으로 사물과 세계를 관조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하림시인은 서울예술대 강단에 서면서 장석남, 이진명, 이승희, 박형준, 이병률, 이원, 이향희, 최준 등 제자들을 양성했다.
또한 제11회 이산 문학상, 제5회 현대불교문학상, 제2회 올해의 예술상 문학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간암 투병 중이던 최하림 시인은 지난 2010년 4월 22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 도시의 아이들
아버지는 새벽마다 쇠스랑을 메고 들길로 나가, 메상골 열두 마지기 밭에 콩과 참깨를 심고 잡풀을 뜯고 똥거름을 주셨다. 어스름이 달리는 저녁녘이면 집으로 돌아와 풍년초를 태우고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깊이 잠으로 들어가셨다.(중간 생략)
※ 출처 :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문학과 지성사) 67p
※ 매상골 : 매산골 또는 진가랫재라고도 부른다. 팔금면 채일봉 아래 고향 외밭골 부근에 있는 산자락 들이다. 여기에 시인의 밭이 있었다.
※ 풍년초 : 당초, 1988년에 자취를 감춘 아주 오래된 담배(궐련)의 하나로 봉초의 옛 이름 중 하나다.
2. 아침 유대
숲속에서 아이들이 온다/ 아이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포르릉포르릉/ 날며 이른 아침 들판으로/ 햇빛을 몰고 온다/ (중간생략)
아이들이 떼지어 온다/ 푸른 숲으로부터 온다/ 사립문 새로 속살이 희게 드러난/ 길이 열리고 어머니가 가리마 탄/ 머리를 들고 온다/ (중간생략)
미소 속으로 아버지가 쇠스랑을 메고/ 온다 이슬 젖은 잠방이 바람으로 온다/ (오오 고통스런 세상으로 오시는 아버지!)/ 노동으로 빛난 얼굴을 하고 아버지는/ 사립으로 온다 우리 가족은 모두/ 아침의 유대 속에서 아침의 빛을 뿌리며/ (중간생략)
※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문학과 지성사) 90p
※ 시인의 아버지 모습은 늘 쇠스랑을 메고 일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어렸을 적 평범한 고향의 아버지 모습이 아니었을까?
※ 시인의 작품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글들이 많이 보인다. 외모도 어머니를 많이 닮았었다.
3. 집으로 가는 길
많은 길을 걸어 고향집 마루에 오른다
귀에 익은 어머님 말씀은 들리지 않고
공기는 썰렁하고 뒤꼍에서는 치운 바람이 돈다
나는 마루에 벌렁 드러눕는다 이내 그런
내가 눈물겨워진다 종내는 이렇게 홀로
누울 수밖에 없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마룻바닥에 감도는 처연한 고요
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고요에 이르렀구나
한 달도 나무들도 오늘 내 고요를
결코 풀어주지는 못하리라 ※ 출처 : 떠난자를 위하여 외 / 최하림
※ 고향에 들러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4. 음악실에서
걸어갈거나, 오늘도 나는 걸어갈거나
음산한 바람은 버릇같이 나를 달래고
어는 한곳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기러기 떼처럼 하늘을 흔들며 가고
온종일 지저귀다가 보는 저녁 햇빛을 받은
떨어진 잎새의 흔적들
참 저녁 햇빛은 우리 것이다 저녁 햇빛은 우리 것이다
이렇게 피곤할 때면 나는 어머니 곁으로 가 누우리 어머니 곁에 누우면 물소리 흐르는 나무들이며 이파리들이며 그리도 조용한 삼라만상이 내 생전 처음 내곁에 와서 소곤거리고,
※ 힘들 때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썼던 글이다.
5. 마른 가지를 흔들며
가뭄이 타는 대지를 걸어 당신께서는
신작로 끝의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드시고
앙상한 가지들은 일제히 마른 소리를 냈습니다
당신께서는 앞개의 수답(水畓)에서 잃으신
수확을 그렇게 정성으로 보충하셨습니다
겨울이 소리 없이 뒤를 따라왔습니다
이삼월의 기근이 골목을 누비고
오막살이를 심하게 흔들 때에도
흰 무명으로 누추함을 감싸시고
당신께서는 언제나 그늘이 길게 뻗친
저녁의 네거리와 그 언저리에서 떠나셨습니다
아아 그때의 어귀에서 흔들리던 일정
오랜 해수처럼 가래를 끌록이면서
바닷가에서는 이윽고 소복소복 눈이 내리고
눈먼 소년이 더듬거리며 눈을 밟고 갔습니다
어머니여 이제는 나도 눈먼 소년과 같이
어둠을 밟고 갑니다 휘어진 도시의 거리에서
그들이 넘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들이 패배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들이 우는 소리를 필경은 들을 것이고
그리고 도시의 앙상한 가로수를 흔들고
가로수들이 마르게 마르게 소리하는 것을 들을 것입니다.
※ 앞개의 수답(水畓) : 물대기가 좋은 논, 마을 어귀 앞 부근에 시인의 논이 있었다. 도내기(동네어귀) 샘 앞쪽이다.
※ 오막살이 : 알대미(아랫 동네) 초가에서 살다가 사장뜸(마을 어귀 쪽) 오두막집으로 이사했다.
6. 설야(雪夜)
하늬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 밤 그이는
하마 취비강을 건너갔을까 보내는 이들이
밤을 설치며 그리는 그 얼굴 그 눈동자가
가슴에 불 붙어 타오르는데
그이는 수많은 노두(爐頭)를 건너서
바람과 눈보라를 헤치고
무사히 자유에 발 디뎠을까
슬퍼라 어둔 지방의 인내를 버리고
사나이들은 사랑을 찾아 고단한 육신으로 산과 내를 건너가는데
밤 물길을 끌고 지친 화적패처럼 건너가는데
음산한 지방을 물들이면서 말을 버리고
내리는 눈 눈 눈
눈이여 오만 가지 죄의 모습과 인욕을 씻고
가는 이의 사랑을 따라나서는 길을 마련하라
구석구석이 거짓으로 가득한 밤
우리들은 거짓에서 배어 나오는 암흑을 보며
암흙속에서 승냥이처럼 울부짖는다
울부짖음이 암흑 속으로 사라져
암흑이 되어 돌아온다 암흑이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눈보라 속으로 몰아간다
※ 취비=>췌비(추엽) : 암태 추포도에 있는 동네 이름
※ 노두 : 암태 도창리 수곡 염전에서 추포도로 이어지는 노둣길을 말한다. 총 1km로 지금은 포장이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물이 쓸 때만 건널 수 있었던 험난한 바닷길이다.
7. 貧弱한 올페의 回想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나무들이 日前의 폭풍처럼 흔들리고 있다
먼 들을 횡단하여 나의 精神은 不在의 손을 버리고
쌓여진 날이 비애처럼 젖어드는 쓰디쓴 理解의 속
계단의 광선이 거울을 통과하며 시간을 부르며
바다의 脚線 아래로 빠져나가는
오늘도 외로운 發端인 우리
아아 무슨 根據로 물결을 출렁이며 아주 끝나거나 싸늘한
바다로 나아가고자 했을까 나아가고자 했을까
機械가 의식의 잠속을 우는 허다한 허다한 港口여
수없이 작별하고 수없이 만나는 선박(船舶)들이여
이 雲霧 속, 찢겨진 屍身들이 걸린 침묵 아래서 나뭇잎처럼
토해 놓은 우리들은 오랜 붕괴의 부두를 내려가고
저 시간들, 배신들, 나무와 같이 심은 별
우리들의 소유인 이와 같은 것들이 肉體의 격렬한 通路를 지나서
不明의 아래아래로 퍼져버리고
나의 가을을 잠재우라 흔적의 湖水여
지금은 물속의 시간, 가라앉은 고향의
말라들어가는 응시에서 핀
보라빛 꽃을 본다
나무가 장난처럼 커 오르고
푸르디푸른 벽에 감금한 꽃잎은 져 내려
분홍빛 몸을 감싸고
직모물의 무늬같이 不動으로 흐르는
기나긴 鐵柱를 빠져나와 모두 떠오른다
旅人宿에서처럼 낯설게 임종한, 그 다음에 물이 흐르는 肉體여
아득히 다가와 주고 받으며 멀어져가는 비극의 저녁은
서산에 희고 긴 비단을 입고 오고 있다
아주 장대하고 단순한 바다 위에서
아아 유리디체여!
(유리디체여 달빛이 흐르는 철판 위
人間의 땀이 어룽져 있는 건물 밖에는
달이 떠 있고 달빛이 기어들어와
파도소리를 내는 철판 위
빛낡은 감탄사를 손에 들고 어두운
얼굴의 목이 달을 보면서 서 있다)
푸르디푸른 絃을 律法의 칼날 위에 세우라
소리들이 떨어지면서 매혹하는 음절로 칠지라도
너는 멀리 故鄕을 떠나서 긴 팔굽만을 슬퍼하라
들어가라 들어가라 계량하지 못하는 조직 속
밑푸른 심연 끝에 사건이 매달리고
붉은 황혼이 다가오면 우리들의 結句도 내려지리라
아무런 이유도 놓여 있지 않은 空虛 속으로
어느 날 아이들이 쌓아올린 언어
휘엉휘엉한 철교에서는 달빛이 상처를 만들며 쏟아지고
때없이 달빛이 걸린 거기
나는 내 正體의 知慧를 흔든다
들어가라 들어가라 下體를 나부끼며
아이들이 무심히 선 바닷속으로
막막한 江岸을 흘러와 死兒의 場所 몇 겹의 죽음
장마철마다 떠내려온, 노래를 잃어버린 신들의 항구를 지나서.
유리를 통과한 투명한 漂流物 앞에서 交尾期의 魚類들이 듣는 파도소리
익사한 아이들의 꿈
기계가 창으로 모든 노래를 유괴해간 지금은 무엇이 남아 눈을 뜰까
…下體를 나부끼며 海岸의 아이들이 무심히 선 바다 속에서.
※ 올페 : 프랑스어 (오르페우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음유시인, 리라(하프)의 명수
※ 유리디체 : (에우리디케) 오르페우스의 아내
※ 기계문명에 의해 좌절되어버린 유년의 꿈(현대인의 희망)을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통해 그리고 있다.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영혼의 불사와 영원의 행복을 얻는다는 교리이다.
최하림 시인의 프로필과 작품세계
기고: 김제희 선생님
(전남 신안군 팔금면, 故 최하림 시인의 친구)
본명 최호남(崔虎男
필명 최하림(崔夏林)
(1939년 3월 7일 ~ 2010년 4월 22일)
출생지 : 전라남도 신안군 팔금면 원산리
○ 저서(작품)
우리들을 위해, 작은 마을에서, 겨울 깊은 물소리,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풍경 뒤의 풍경,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 최하림 시전집
○ 대표관직(경력)
한국일보 기자
열음사 주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전남일보 논설위원
글쓴이-김제희 전 신안군의회의장.
정리=조국일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