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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일의 목포 갯지렁이 이야기
목포를 먹여 살리던 갯지렁이 남획 등으로 명성잃어...현재 우리나라 연간 600여 톤 갯지렁이 중국 등지에서 수입하는 국가로 전락, 이제는 인공기술로 양식하여 우리 갯벌에서 번창시킬 수 있어
조국일폭로닷컴대표

 

 [조국일의 목포 갯지렁이 이야기]

     
                                           
“비행기가 이깝 싣고 빠리까지 날라 댕기던 시절에
목포사람들은 이깝 캐서 묵고 살었었제“

 

 

 

‘이깝’ 은 미끼의 전라도, 경남, 충남 지방의 방언이며, 목포에서는 통상 낚시 미끼에 쓰이는 갯지렁이를 말한다.

 

1970년대 초부터 목포는 낚시 미끼 중에 최고인 ‘홍거시’ 라는 갯지렁이의 우리나라 최대 집산지였으며, 그 당시 수산물 중 가장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 품목이었다.

 

목포 인근 신안, 영암, 해남, 무안, 강진 등 갯벌에서 서식하는 갯지렁이는 크게 ‘홍거시’ 와 ‘청거시’ 로 구분한다.

 

▲ 아깝캐는 아낙네(그래픽 아트기법)     © 신안신문/폭로닷컴 편집국


‘홍거시’ 는 몸 전체가 붉은 색깔을 띠고 있어서, 붉을 홍(紅)과 지렁이를 뜻하는 지방 방언인 ‘거시’ 의 합성어로 학명은 ‘바윗털갯지렁이’ 이다. 본충(本蟲)또는 홍충(紅蟲)으로 부르기도 하며, 일본어로는 혼무시(本虫, ホンムシ)라고 한다.

 

‘청거시’ 는 푸를 청(靑)에 ‘거시’ 의 합성어 이며, 학명은 ‘두토막눈썹참갯지렁이’ 이다. 과거에 목포에 취합해서 수출되던 대부분의 갯지렁이는 ‘홍거시’ 였다.

 

우리나라 갯지렁이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0년대에 일본은 해양생물학자들을 시켜서 우리 갯벌의 갯지렁이를 연구했었다.

 

그들은 우리나라 ‘홍거시’ 를 일본의 ‘혼무시’ 와 학명은 같으나 미세한 차이점이 있다고 하여  ‘조센혼무시(朝鮮本虫)’ 라고 명명했는데, 같은 갯벌에서 서식하지만 일본산 갯지렁이가 조선 것 보다 훨씬 힘이 세고 강하다며 우리 갯지렁이까지 비하했다 하니, 식민지 정책의 치밀함과 간교함에 경악할 뿐이다.

1970~1980년대 초까지 급속한 경제성장을 했던 일본 수입업자들은 우리나라 갯지렁이에 눈독을 들이면서 늘어나는 자국 낚시 인구에게 팔아먹기 위해 한국 수출회사와 수입계약을 맺고 거의 매일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 시기에는 목포 갯지렁이가 해외에도 알려져서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까지 수출했으며, 한국은 세계 갯지렁이 수출국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이렇게 80년대 초기까지 수협중앙회 무역부와 아남수산이라는 곳이 정부로부터 갯지렁이 채취 독점 허가를 받아서 유통업자들을 통해 하루 평균 1,500명 이상 인력을 동원해서 매일 2톤에서 많게는 5톤이 넘는 갯지렁이를 채취해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이러다 보니 연간 1,000톤이 넘는 갯지렁이 수출량을 충당하려고 유통업자들은 아예 갯지렁이 채취 선단을 조직하였다.

 

종일 갯벌에서 막노동을 해야 하는 채취 선단에 모인 사람들 상당수는 빈민층이나 기타 부랑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갈 곳 없는 부랑자들에게는 술 주고, 담배주고,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꾀어서 갯벌로 내 몰았고, 중간업자들은 이들에게 수출 가격의 약 5% 정도의 저비용을 지급하며, 엄청난 폭리를 취하였다.

 

또한, 수천 명이 전남의 갯벌 여기저기에서 일하다보니 사고도 많았는데, 깊은 펄에 빠져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밀려오는 해류에 익사한 일도 발생했다하니, 지금 같으면 상상할 수 도 없는 인권유린으로 얼룩진 참혹한 역사도 있었다.

 

그렇게 사람 목숨 값으로 돈을 번 자들의 뒤를 봐주는 관료들도 있었고, 당시 국회의원 수십 명도 먹여 살렸다는 후문도 있었으니, 무지막지한 군사독재시절에 갯지렁이로 벌었던 외화의 일부는 권력을 쥔 정치인들의 뒷돈으로 흘러갔다는 야사가 있을 정도로 목포의 갯지렁이 수출 역사는 질곡으로 점철된 날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포에 사는 많은 주민들은 당시 하루 많게는 몇 천원의 큰 돈벌이를 위해 갯지렁이를 캐러 다녔고, 힘들게 번 돈으로 자식들 학교도 보내고, 양식도 사고, 빚도 갚고, 병원도 다녔다고 하니, 그때는 목포가 갯지렁이 수출 경제로 운영되는 도시였다고 말하는 경험자들의 증언이 조금은 과장되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그때 목포는 갯지렁이 채취와 유통의 세계적 중심지였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갯지렁이가 중요한 외화벌이로 떠오르면서 정부까지 발 벗고 나섰다. 목포로 집하된 갯지렁이를 살아있는 상태로 하루 만에 만km가 넘는 유럽까지 보내야 했기 때문에, 목포에서 김포국제공항까지 가는 운송편이 늘어났다.

 

거기에 김포에서 프랑스 파리공항까지 가는 항공편을 증설시켜주면서까지 수출을 독려했으며, 이로 인해서 갯지렁이를 운송하는 유럽항로 때문에 대한항공이 성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하니, 목포의 갯지렁이는 우리나라 수산물 수출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일이 있었는데, 필자가 2014년에 당시 유럽 낚시미끼 유통의 중심지인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중국 상하이 푸동 공항에서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까지 운송된 중국산 ‘홍거시’ 를 재포장해서 ‘꼬레아노(Coreano)’ 라는 상표로 팔고 있었다.

 

한국인을 뜻하는 ‘꼬레아노’가 스페인 판매회사의 상표인지 아니면 갯지렁이 이름인지 너무나 궁금했던 필자는 명칭의 유래를 물었는데, 과거 한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갯지렁이가 유럽으로 수입되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조건 동양에서 수입되는 품질 좋은 홍거시(영어 학명: Marphysa sanguinea)는 ‘꼬레아노’ 라고 불러야 비싸게 팔린다고 하니, 과거 우리나라 갯지렁이의 화려한 수출 이력은 현재에도 유럽에서는 실화였다.
 
세월이 흘러 1987년 민주항쟁의 바람은 갯지렁이 수출업체에도 불어오면서, 정부의 규제 하에 특정업체만 주어지던 갯지렁이 채취에 관한 독점적 권한인 '쿼터제'가 폐지되었다.

그러자 우리나라 모든 어촌계에서 갯지렁이를 채취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갯벌이 있는 전국 어느 곳이나 갯지렁이를 캐서 팔기 시작했다.

 

거기에 한국 갯지렁이가 수출로 큰 외화벌이가 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 중국이 자국 갯벌에서 갯지렁이를 잡아 유럽 등으로 수출하면서 해외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에 중국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이 300달러 안팎이었고, 우리나라가 5,300달러 정도였으니, 저렴한 인건비와 많은 노동력과 넓은 갯벌을 보유한 중국인들에게 갯지렁이 수출은 그야말로 바다에서 금을 캐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결국 단기간에 우리나라는 중국에 갯지렁이 수출 종주국의 위치를 빼앗기게 되었고, 소량만 일본이 가져가면서 목포 갯지렁이 수출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는 갯지렁이 채취보다 덜 힘든 어패류 양식이 도입되면서, 갯지렁이 관련 노동력도 감소하였다.

 

자연스럽게 목포는 갯지렁이 산지로서의 명성이 사라지고, 갯지렁이에 종사하던 사람들도 다른 일을 찾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생존해있는 사람들은 한때 화려했던 목포 갯지렁이 수출의 기억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갯벌에 사는 갯지렁이 라는 작은 해양 생물이 인간들에게 주는 무수히 많은 혜택과 소중함을 잊고 살아왔다.

과거 수십 년 동안 해외로 수출된 수만 톤의 목포 갯지렁이는 비행기 타고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해변까지 가서 낚시꾼들의 미끼로 팔렸고, 그 덕에 목포 사람들은 돈은 벌었지만, 무분별한 채취로 정작 우리의 갯벌에는 갯지렁이 씨가 말라버렸다.

 

거기에 간척지 개발과 항만시설 확충, 조선조 건립 등에 필요한 농토와 부지를 만들기 위해 갯벌을 매립하고 제방을 쌓는 과정에서 해양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되어 갯벌은 아예 육지가 되어버렸다.

갯지렁이가 사라진 갯벌은 즉시 죽어갔고, 물고기는 먼 바다로 이사를 가버렸다.

 

지금은 수십 km의 거대한 방조제가 쌓여서 강과 육지가 되어버린 전남 영암군 미암면 일대와 해남군 산이면, 화원면, 문내면 지역은 제방을 막기 전까지는 각종 어류들이 산란을 위해 귀향하는 세계적인 산란장으로서 알을 품은 어류들은 갯지렁이와 각종 유기영양분을 먹으면서 새끼를 낳았다.

 

▲ 1980년대초 이깝캐는 어부     © 신안신문/폭로닷컴 편집국


현재도 전남 영암 삼호중공업 앞바다와 목포 영산강 하구언 부근, 해남 화원 별암리에 갈치나 바다장어 치어들이 본능적으로 태어난 곳을 찾아서 올라오지만, 산란지로 향하는 수로가 방조제로 막혀 있어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부근에서 머물다가 인간들에게 잡히는 수난을 겪고 있다.

 

바다의 청소부이고 어류들의 고급 먹잇감인 갯지렁이가 사라지니 연안해는 불가사리와 독성이 있는 해파리가 우점종이 되고, 잡스런 해조류와 패류가 군락을 이루다가 죽어서 썩어가더니 결국 바다 밑바닥은 황폐해가는 ‘바다 사막화 현상’ 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과 갯지렁이를 채취해서 돈을 벌었던 값 치고는 인간이 자연에 지불할 대가는 너무 비싸고 참담하다.

갯지렁이 한 마리가 연간 5kg 정도의 유기물을 제거한다고 하니, 그 시절 갯벌에 수백억 마리의 갯지렁이들이 살았을 때 우리 전남의 바다는 그야말로 해양의 보물창고였고, 지금은 구경할 수 도 없는 온갖 귀한 물고기들이 갯지렁이를 먹으려고 근해까지 헤엄쳐왔으며, 가까운 바다에서 그물만 던지면 물고기 가득가득 잡아서 만선 깃발 휘날리던 그 시절은 꿈같은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세계 3대 갯벌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갯지렁이 서식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산과 밭에 있는 붉은 황토가 바다로 흘러내려 퇴적돼서 저서생물이 필요한 각종 영양소를 함유한 갯벌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중국 산동성 해안 일부와 우리나라 서남해안 밖에는 없다.

 

해양환경을 정화시키고, 해양생물들의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어민들의 소득까지 증대시키는 수산자원인 갯지렁이의 중요성을 알기 시작한 선진 해양 국가들은 연구를 통해서 인공양식을 시도하고 다시 새끼들을 갯벌에 방류하면서 해양자원 보호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중요성을 알고 2000년대 초부터 갯지렁이의 무분별한 채취를 금지시키고, 우리 갯벌환경에 맞는 특화된 종자 생산과 양식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도 갯지렁이 연구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연간 600여 톤의 갯지렁이를 중국 등지에서 수입하는 국가이다. 국민소득 증가로 낚시레저 인구도 늘어나서 갯지렁이 수입량도 많아지면서 갯지렁이 관련 무역수지 적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많은 수산생물들이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바뀐 지 오래됐지만 유독 갯지렁이만은 아직도 기르는 법을 국가에서 개발하지 않았다.

벌써 이십년 가까이 일부 대학과 국가연구소 등에 수백억의 연구비를 쏟아 붓고 있지만, 아직도 어민들을 위한 종자생산양식 메뉴얼 하나도 만들지 않고 아까운 국민 세금만 축내고 있기에 일부 어민들은 스스로 자비를 털어가면서 종자생산과 양식에 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보다 늦게 갯지렁이를 연구한 중국은 이미 육상이나 해상에서 인공으로 대량 양식해서 오래 전부터 전 세계 시장을 완전 장악한 나라가 되어있는데 말이다.

“쏘시랑하고 바께스만 들고 갯뿌닥 나가서 시커먼 물이 엉금엉금 들어올 때까지 등거리 한번 제대로 피지도 못허고 일했당게.. 자식새끼들 미게 살릴라고 손마디 퉁퉁 부어감서 이깝 캤던 시절은 목돈도 벌 수 있었제.. 비행기가 이깝 싣고 빠리까지 날라 댕기던 시절에 목포사람들은 이깝 캐서 묵고 살었었제” 라고 말하시는 목포 뒷개 차관주택 사는 80세 넘으신 장씨 어르신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동화 같았다.

 

“그란디 선생이 갯지렁이 전문가 람서, 인자는 양식도 가능할 것 인디 어째 안된당가?” 반문하시는 말씀에는 그 옛날 부흥했던 목포 갯지렁이 역사를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 마음도 묻어 나왔다.

남도 끝자락 호남선 종착역에 하차해서 둘러본 목포연안의 갯벌은 모두 시멘트 부두와 제방으로 변했고, 목포는 지금도 ‘목포의 눈물’ 만 주야장천 부르면서 흘러간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걸음만 나가면 전남 인근에 끝없이 펼쳐진 넓디 넓은 갯벌은 지금도 온갖 바다생물들이 살아가는 생명의 요람이기에 아직 희망은 있다.

 

바다가 애써 낳은 소중한 보물인 갯지렁이는 목포를 먹여 살리다가 오래 전에 우리 곁을 떠났지만, 이제는 인공기술로 양식하여 우리 갯벌에 갯지렁이의 씨를 뿌리고 번창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목포로 모아진 갯지렁이가 무안국제공항에서 전 세계로 날아가는 날이 온다면, 목포는 ‘이깝’ 으로 먹고 사는 갯지렁이 수출 중심지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옛날 옛적에 목포 하면 '갯지렁이' 였다!



*편집자 주

목포 갯지렁이 역사가 비사나 야사로 비춰지지는 않을까 무척 조심스러웠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라서 문헌상의 기록은 전무했다. 그래서 생존하시는 경험자 분들을 수소문해서 어렵게 귀중한 이야기를 담았다. 물론 그 분들의 기억이 모두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한 내용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란다. 불편한 몸으로도 시간을 내어주셨던 그 당시 아남수산⦁수협중앙회 무역부 관계자들, 그리고 채취선단 관리와 중간 유통을 하셨던 분들, 채취선단에서 직접 일하셨던 목포 뒷개에 거주하시는 어르신, 갯지렁이 분류에 도움을 주신 인하대학교 A교수님, 모두의 기억을 짧게나마 알리게 되었다. 인터뷰하신 분들이 사정 상 실명 공개를 원하지 않았음을 이해 바라며, 본 글은 필자가 ‘예향 목포 8호’ 에 기고한 ‘목포 갯지렁이 이야기’를 관계자의 동의를 받아 일부 편집하여 본지에 옮겼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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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2 [11:10]  최종편집: ⓒ 신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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